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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종협 펀드레이저(서울대학교어린이병원)_1 천명의 펀드레이저를 만나다
 관리자  | 2012-05-30 | HIT : 3,448 |

 20년 연속 기획 천명의 펀드레이저를 만나다

 
최종협 서울대어린이병원후원회 사무국 팀장
저희를 통해 도와주시는 것은 아픈 아이를 도와주시는 것뿐만 아닌, 그 아이를 둘러싼 환경, 가정까지도 지켜주는 것입니다.”
 
 이번 5월호 1천명의 펀드레이저를 만나다 에서는 서울대어린이병원 최종협 팀장님의 모금과 관련한 진솔한 이야기를 들어보았습니다.

 
 
팀장님. 요즘 어떻게 지내시나요?
 
요새 많이 바쁘네요. 4월, 5월 그리고 12월 달은 저희 후원회에게는 대목이라 이번 5월 달은 크고 중요하게 추진하고 있는 사업들이 있기도 해서 준비하고 진행하느라 굉장히 바쁘네요
 
어떤 계기로 서울대어린이병원후원회에서 일을 하게 되신 건가요?
 
 공익근무를 서울대병원에서 했어요. 그 때 대부분 공익근무원들은 주차관리업무를 많이 했었는데요. 대학원을 마치고 공익근무를 해서 그런지, 저는 이쪽 어린이병원후원회로 발령이 났어요. 2001년도에 서울대어린이병원 후원회가 출범됐구요 그 당시에 인력 없이 파트타임 사회복지사분께서 일주일에 몇 번 나와서 일을 하고 계셨던 상황이었어요. 뭐, 그렇게 오자마자 어린이병원후원회 업무를 상근직원처럼 하게 된 거였죠. 제대 할 때쯤, 많은 고민을 했었죠.  후원회에서 일을 하면서 보람도 느끼고 적성에도 맞고 직업으로 가져도 괜찮겠다 라는 생각을 많이 했었어요. 그래서 담당교수님께 일하고 싶다고 말씀 드렸어요. 담당교수님께서도 또 흔쾌히 허락을 해주셨구요 그래서 일하게 된 거였죠
 
 그러면, 주로 어떤 업무를 하신 건가요?
 
공익근무원때 처음 시작한 업무는 회원관리였어요. 약정서만 받아놓고 관리를 전혀 하고 있지 않아서 제가 전화와 편지업무를 하면서 약정서를 정리를 했어요. 초반에는 그런 업무를 하다가 사회복지사분께서 그만두시면서 그분이 하셨던 업무까지 제가 다 맡게 되면서 전체적인 후원회 업무를 맡게됐구요. 제대하기 전 1년에서 1년 반 정도는 후원회를 혼자 운영하게 됐어요. 그러다 보니깐 거의 후원회와 관련된 모든 업무를 맡아서 다 했던 것 같아요.. 어떻게 보면 초기에 익혀야 하는 기본적인 업무들을 자의반 타의반으로 익혔던 거지요. 지금도 그 업무들을 계속 하고 있는 상태이지만 본격적인 모금업무를 위해서 관리업무는 다른 직원 분들이 하고 계시구요 저는 지금 모금관련업무, 홍보, 전반적인 기획업무 그리고 환자관리 부분을 맡고 있어요.
 
환자관리라고 하셨는데요. 환자관리에 대해서 구체적으로 말씀해 주세요.
음.. 기부자 분들한테 최대한의 공감을 얻을 수 있는 부분이 환자들인데요. 단순히 아픈 것만으로 기부자 분들에게 접근을 해서는 안되구요 물론 거기에 많이 동하시는 분들이 아직까지 많이 있으시지만 저는 아픈 것만 가지고 접근하는 것에는 한계가 있다고 생각해요. 그래서 도움을 받아서 아이가 얼마나 좋아지고 나아지는지 매년 추적관리를 통해서 확인하고 있어요. 제가 환자에 대해서 잘 알고, 제가 스스로 감동을 받아야 기부자 분한테도 감동을 줄 수 있으니깐 힘들지만 그런 부분도 같이 하고 있어요.
 
그렇군요. 그렇다면 이 일을 하시면서 느끼셨던 보람들이 있으셨을 텐데 어떤 게 있을까요?
 
그렇죠. 일단은 아팠던 아이들이 좋아져서 더 이상 치료를 하지 않게 된 경우들이 있었구요. 두 번째는 아픈 아이를 도와줬을 때 아이만 도와주는 것뿐만 아니라 아이를 둘러싼 환경적인 부분에 많은 변화가 되요. 예를 들어, 미혼모나, 아이의 질환으로 인하여 가정의 불화가 생겨서 치료뿐만 아니라 양육까지 포기하게 되는 그런 부모들한테 적든 크든 지원을 통해 경제적인 위기를 넘길 수 있는 가족들이 있거든요. 그렇게 와해될뻔한 가정이 이런 지원을 통해서 아이들도 좋아지고 보호자들이 마음을 바꾸고 아이의 치료에 적극적이고 다시 가정을 꾸리고 그렇게 됐을 때 “아! 우리가 하는 사업이 단순한 사업이 아니구나. 어떻게 보면 사회의 가장 기초를 구성하는 가정을 지켜주는 사업이구나” 라는 것을 느꼈을 때 보람을 느끼죠.
 
[인터뷰 도중 전화가 왔는데 통화내용에 낯익은 이름들이 들렸습니다.] 지금 혹시 말씀하신 분들이, 박용택, 이대호, 이진영 선수인가요? 이분들도 기부를 하고 계신 건가요?
 
네. 이분들은 한 5년 정도 저희한테 기부를 하고 계세요. 이분들은 본인들의 성적에 따라서 기부를 하시는데요 뭐 가령 박용택 선수 같은 경우에는 안타 하나를 치면 만원 이런 식으로 시즌 성적에 따라서 기부를 하세요. 근데 그 기부가 구단에서 주는 게 아니라 본인들의 연봉에서 주는 거예요.
 
이분들 말고도 다른 선수들이 있나요?
 
지금 저희랑 연계된 선수들은 이분들이고요. 최근 두산의 김동주 선수 부인이 저희와 연계를 맺고 계세요. 봤더니 이분은 굉장히 많은 아이들한테 매달 후원하고 있으시더라구요. 저희 아이 한 명을 후원하고 계세요.   
 
팀장님께서도 일을 하시다 보면 한번쯤은 좌절이나 어려움을 느끼셨을 텐데요. 어떨 때 그런 걸 경험하셨었나요?
 
아직까지는 한국의 기부자분들의 대부분이 당장 아픈 아이들을 살려주고 싶어하세요. 물론, 그런 것들도 훌륭한 일이지만 많은 환자들한테 실질적으로 도움을 줄 수 있는 여러 가지 방법들이 있는데 너무 한 곳에만 국한돼서 환자지원 쪽으로만 기부가 몰리는 것이 좀 안타깝기는 해요. 저는 기부가 특정환자한테만 도움을 주는 것이 아닌 어린이병원을 찾는 많은 환자들에게 도움이 될 수 있었으면 좋겠어요. 제가 생각한 부분까지도 많은 기부자들이 호응을 해주신다면 병원이 발전하는데 꼭 건물을 세우고 그런 것이 아닌, 연구를 통해 아직 고치지 못하고 있는 아이들의 병 치료법을 찾는다거나, 고통스럽게 치료받는 아이들의 투병기간을 단축시킨다거나, 집이 잘살고 못살고를 떠나 아이들은 어차피 우리가 책임져야 하는 아이들이기 때문에 그런 상세한 부분까지도 신경을 써줬으면 좋겠는데 아직 그런 부분까지는 성숙되지 못한 점들이 안타깝네요. 특히, 어린이병원에 대한중요성을 선진국에 비해 국민들이 잘 모르시는 것도 많이 아쉽구요. 국민들에게 어린이병원의 중요성이 잘 알려질 수 있도록 활동을 해야 하는데 못하고 있다는 점에서 책임감을 많이 느끼고 있습니다
 
그런 어려움들을 팀장님께서는 어떻게 극복하셨나요?
 
병동에 자주 돌아다니면서. 환자들이랑 보호자들이랑 이야기를 많이 해요. 처음 공익근무원으로 왔을 때는 마냥 아이들이 좋고 일이 재미있어서 관계를 많이 맺었어요. 그러다가 상처를 받았어요. 쉽게 말하자면 정을 줬던 아이들이 사망했을 때가 있거든요 그러면 내 자식 잃은 것 마냥 슬퍼요 지금도 가슴속에 트라우마로 남은 케이스 들이 많은데.. 그러다 보니 왜 의사선생님들이 환자를 대할 때 굉장히 냉철하고, 객관적으로 보는 지 이해가 되더라구요. ”아! 그렇게 해야 되겠구나” 라고 생각하고 일을 일로서 몇 년 하다 보니, 일에 대한 재미와 흥미도 없어지고 의무감만 남는 거예요. 나중에 내가 상처를 받을 수는 있겠지만 다시 환자들과 관계를 맺기로 했어요. 사실 제가 하는 일이 우리 병원의 환자들을 위해서 하는 일인데 그 친구들이 왜 힘든지 뭐가 어려운지를 모른다면, 정말 룰도 모른 체 경기를 뛰는 것과 마찬가지라고 생각을 해요. 그래서 요즘엔 병동을 많이 다니면서 아이들과 보호자들과 이야기를 많이 하고 있어요. 또 그런 것들을 통해서 힘을 많이 받아요.
 
 
 
아이들이 무엇이 필요하고, 무엇이 어려운지를 모른 체 모금활동을 한다는 건, 그건 룰도 모른 체 경기를 뛰는 것과 마찬 가지라고 생각해요
 
 
 
 그 동안 많은 아이들을 봐오셨잖아요. 특히 기억에 남는 아이가 있으신가요?
 
흡수장애신드롬이라고 우리나라에서 3명 있는 희귀질환을 앓고 있는 아이가 있었어요. 제주도에서 저희 병원으로 와서 치료를 받았던 아이예요. 애가 예쁘장하고 애교도 있고 귀여웠어요. 어머니님도 살갑게 대해주셨어요. 한참 치료를 받고 있을 때 지정기금도 좀 많이 연결해주려고 한다고 했는데 그게 항상 부족했어요. SBS의 Y라는 프로그램에 이 아이의 이야기가 나온 적이 있었어요. 그 아이의 방송분량을 7분 정도 압축을 해서 방송된 내용을 볼 때 마다 계속 눈물이 나는 거예요. 그 아이에 대해서 잘 아니깐 더 그랬었나 봐요 방송의 마지막에 아이가 사망했다는 얘기가 나오는데 가슴이 많이 아프고 그게 못으로 박혔어요. 내가 좀 더 열심히 지정기금으로 연결할 수 있도록 더 노력했다면 달라지지 않았을까 이런 생각들이 들더라구요. 그래서 그런지 이게 아직도 트라우마로 남네요.
 
기억에 남는 기부자 분이 계신가요?
 
네. 그분은 소액으로 월정기부 하고 계시는 분이세요. 제가 공익으로 있을 때 항상 아버지가 초등학교 저학년 정도 되는 딸을 데리고 병동을 다니시더라구요. 봤더니 수술을 받고, 후유장애가 남은 환자였는데 재활 때문에 계속 걸었던 거더라구요.  저희 쪽에서 후원을 받았던 친구데, 나중에 퇴원을 하고 한참 후에 2007년쯤 됐나 사무실에 엄마 아빠 딸이 오셨더라구요. 본인이 너무 힘들었을 때 도움을 받았었는데 그게 큰 도움이 되었다고 너무 고맙다면서 우리 딸아이 같은 상황에 있는 아이들한테 도움을 주고 싶으시다고 약정하고 가셨어요. 저희 같은 경우에는 거액 기부하시는 분들이 많으시지만 그분의 기부가 가장 기억에 남는 것 같아요
 
현재 어린이병원에서 후원회의 위상은 어떤가요?
 
일단은 예전에 비해선 위상이 조금 높아진 것 같아요. 저희가 뭐 큰 성과를 못 내지만 컨설팅을 하고 계셔서 알고 계시지만 거액기부부분을 제외시켜놓고 보면 저희가 나름대로 매년 성장을 하고 있거든요. 그 성장 부분에서 모금액 부분의 성장도 있겠지만 후원사업 부분에서도 성장을 보이고 있어요. 다른 재단들과 같이 입원비 수술비만 지원하는 것에서 최근에 저희는 치료에 필요한 모든 부분 하다못해 치료를 끝나고 돌아가도 동네에서 재활치료 받는 것까지 돕고 있어요. 그 애가 정말로 말 그대로 치료비 걱정 없이 치료를 할 수 있게끔 해주고 있는 것이죠. 아직 많이 부족하지만 그게 저희가 예전부터 추구했던 방향이고, 그러면서 위상은 계속 높아지고 있습니다.
 
팀장님의 위치는 어떠세요?
 
 개인적으로 작년까지만 해도 일반 관리자였다면 작년 후반부터는 제가 스스로도 펀드레이저, 모금전문가라고 불러도 어디 가서 얼굴 빨개지지는 않겠구나 라는 정도는 된 것 같아요. 그만큼 기부자들에 대한 이해도나 우리단체에 대한 애정, 이해도뿐만 아니라 앞으로 우리가 어떤 길을 가야 될지에 대해 얘기할 수 있는 그런 위치가 된 것 같구요. 하지만 여전히 원내서는 일 못하는 사람으로 취급을 받고 있죠 항상 일을 크게 벌여놓는 스타일이라서 그 마무리가 안되더라고요 항상 사고를 유발해요 왜냐면 기획만 하고 계획만 세우면 더 이상 동력이 생기지 않고 참여도도 낮아지거든요. 일단 일을 벌여놓고 이렇게 했으니깐 우리 수습해야 한다고 ‘이것 좀 도와주세요’‘이것 좀 관리 좀 해주세요’ 라고 직원 분들께 부탁을 많이 하거든요
 
팀장님께서는 어떤 펀드레이저로 남고 싶으세요?
 
이 분야에 계시는 분들한테도 말하지만 저는 이 분야에서 최초로 억대연봉을 받는 그런 모금전문가가 되고 싶어요 그 억대연봉이 제가 돈을 많이 받겠다는 말도 있지만, 그 정도를 줘도 아깝지 않을 만큼의 역량을 갖추고 싶어요.  그리고 개인적으로는 굉장히 자랑스러운 남편과 아빠가 되고 싶구요. 나중에 아들이 학교 가서도 “아버지 뭐 하시는 분이셔” 라고 떳떳하게 얘기할 수 있었으면 좋겠어요.  
 
펀드레이저는 누구나 시작할 수 있는 일이지만 아무나 해서는 안 되는 일입니다. 이 일을 즐길 수 없다면 할 수 없는 일입니다.
 
 
펀드레이저에 대해 관심을 가지고 계신 분들에게 해주실 만한 이야기가 있으신가요? 가령 조언이나 노하우 같은 부분들이요.
 
저도 모금업무를 본격적으로 시작한지 얼마 안됐고, 제가 모금업무를 하고 있구나 라는 사실조차 모른 체 그렇게 해왔어요. 좋은 점이라고 하면 특별한 전문적인 기술이라든가 지식이 없어도 누구나 시작 할 수 있는 일인 것 같아요 그래서 장벽이 없다고 보면 되겠죠 누구나 이 부분에 대해서 사명감을 느끼고 보람을 느낄 수 있다고 생각하는 분들은 정말로 편하게 이 분야 쪽으로 많이 참여해주셨으면 좋겠어요 반면에 아무나 할 수 있는 일이면서도 아무나 해서는 안 되는 일이라고 생각해요 실제로 일하다 보니깐 이 분야의 일을 일이라고 생각하면 일을 못하겠더라 구요 이게 일이어서는 본인뿐만 아니라 단체한테도 이득이 되지 않는다고 생각하구요 일이 힘들고 쉽고를 떠나서 여기서 보람과 재미를 느끼지 못하면 일을 못하는 것 같아요.  이쪽에 뜻이 있으신 분들은 준비가 많이 되어있고, 노력도 많이 하시는 분들이 와줬으면 좋겠어요. 저처럼 능력 없는 사람들이 와서 10년 동안 시행착오 겪고 맨땅에 헤딩을 해서 몸으로 겪는 것보다는 이미 준비된 사람이 와서 빠른 시일 안에 정말로 훌륭한 업적들을 쌓을 수 있는 그런 분들이 왔으면 좋겠어요
 
 
후원회 팀장님으로서 어린이병원후원회에서 원하는 펀드레이저의 인재상이 있으신가요?
 
마인드가 굉장히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스킬은 저처럼 뒹굴고 깨지고 얻을 수 있는 게 스킬 이고 저보다 똑똑한 사람들이 온다면 이론을 통해서 실천까지 금방 익힐 수 있는 있을 테니까 스킬은 별로 중요하다고 생각안하구요. 수혜자들의 마음을 움직일 수 있는 펀드레이저가 왔으면 좋겠어요 환자와 보호자들의 마음을 이해하고 같이 공감하고 그들의 마음까지도 움직일 수 있는 분이었으면 좋겠어요. 왜냐면 모금은 내가 하지만 모금을 하는데 있어 아이템은 그 수혜자들이거든요 이 사람들의 필요성과 니즈와 사연이 모금을 하는데 동력이 되기 때문에 환자와 소통을 할 수 있는 펀드레이저가 왔으면 해요.
 
마지막으로 요즘에도 모금과 관련된 공부를 많이 하고 계세요?
 
도움과나눔 과정이 끝나고 나서 요즘은 희망제작소에서 교육을 듣고 있어요. 두 교육과정 모두 장단점이 있더라구요. 도움과나눔의 경우에는 대부분은 현업에서 모금을 하고 계시는 분들이 많이 들으시는데,. 지금 듣는 희망제작소 경우는 모금을 하시는 분들보다 비영리단체에서 일하고 계시는 분들이 많아요. 그래서 난이도를 따지자면, 도움과나눔이 조금 더 높고 이해도라든지 흥미로운 모금의 강의를 듣는다면 희망제작소이에요. 커리큘럼도 다양하고 실습이라든가 경험위주들이 많은 것 같아서 각각의 장단점들이 있는 것 같아요. 서로 보완적인 면도 있어서 모금공부에 도움이 많이 됩니다.
 
팀장님 같은 분께서 아직도 이렇게 열심히 공부하신다니, 고개가 숙여지네요. 이제는 공부하시는 것도 좋지만 그 동안 쌓으신 노하우와 경험들을 다른 분들과도 많이 나눠 주시는 것도 좋을 것 같습니다. 바쁘신데 인터뷰에 시간 내주셔서 감사 드립니다.
 
천명의 펀드레이저를 만나다
인터뷰 진행: 이영동 주임 컨설턴트, 이주연 컨설턴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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