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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Home > 모금지식카페 > NGO 이야기




이철희 펀드레이저(IVF)_1천명의 펀드레이저를 만나다
 관리자  | 2012-07-24 | HIT : 6,981 |

 

20년 연속 기획 천명의 펀드레이저를 만나다.
 
이철희 IVF 행정총무
 
 
모금가의 전문성에 대한 사회적 인정이 있다면 더 힘이
날 것 같아요.” 
 
 
 
 
 
 
 
 
 
 
 
 
 
 
 
 
이번 ‘1천명의 펀드레이저를 만나다’ 에서는 IVF의 이철희 행정총무님과 모금에 대한 이야기를 들어보았습니다
 
안녕하세요. 작년 저희 회사에서 강의해주신 이후로 처음 뵙는 것 같습니다. 그 동안 어떻게 지내셨는지 궁금해요 그리고 행정총무를 맡으신 걸로 들었는데 구체적으로 어떤 일을 하시는 건가요?
 
제가 하고 있는 행정총무라는 역할이 모금업무, 일반행정, 인사, 재정관련 업무를 다 포함해요. 모금분야도 제가 관여하고 있는 부분이기도 한데 다른 펀드레이저들처럼 모금만 전문적으로 한다고 말하기는 어렵구요. 이렇게 4가지 부분을 신경써서 하고 있어요.
 
지난 한해 동안은 처음 이 역할을 맡게 된지라 분위기 파악에 시간을 많이 보냈어요. 올 상반기 보내고나니 어떻게 굴러가는지 대충 감이 왔어요. 4가지 모두 다 잘하기는 힘들 것 같아서 인사 파트랑 행정 파트는 위임하여 supervising만 하고, 재정과 모금 부분, 즉 어떻게 걷어서 어떻게 쓸 것인지에 대해서 좀 더 포커스를 맞춰서 하고 있어요.
 
IVF에 대해서 잘 모르시는 분들에게 어떻게 소개할 수 있을까요?
 
IVF는 Inter-Varsity Christian Fellowship의 약자구요. 정식 명칭은 사단법인 한국기독학생회입니다. 한국에는 1956년에 설립되었고 세계 150여개 나라에서 활동하고 있는 대학생 선교단체입니다. 쉽게 말하자면 비그리스도인들도 잘 알고 계신 CCC와 비슷한 단체예요. 자세히 들여다 보면 중요한 차이가 있지만요. IVF의 사명은 “캠퍼스와 세상 속의 하나님 나라 운동” 입니다. 하나님 나라란 하나님이 다스리는 나라, 하나님의 주권이 인정되는 나라를 말해요. 대학과 이 사회 속에서 하나님의 뜻과 가치가 실현되기를 꿈꾸며 힘쓰는 단체라고 정리하면 될 것 같아요.
 
IVF는 어떻게 처음 들어오시게 되셨나요?
 
저는 모태신앙인데요. 어렸을 때부터 자연스럽게 교회를 다녔어요. 고등학교 때 찬양집회도 쫓아다니고 성경퀴즈대회에서 1등도 하는 등 교회에서 신앙생활을 열심히 했어요. 그러다 대학에 들어갔는데 문화 충격을 많이 받았어요. 신앙이 나에게 무슨 의미인가에 대해서 많이 생각하게 되었죠. 기존에 쌓아왔던 신앙이 대학 문화에 부딪치면서 부스러지는 것을 경험하면서 1학년 때 방황을 많이 했었어요. 대학에 들어왔다는 것 이상의 삶의 목표도 그 당시엔 없었어요. 그러던 중 우연히 IVF 라는 모임을 소개 받고 찾아가보게 됐어요. 저는 성경에 나오는 단편적인 지식이나 외우면서 살았는데 이 사람들은 이 성경에 나오는 이야기들이 자신들의 삶에 어떤 의미가 있는지를 논하고 있는 거예요. 어떤 의대생 형은 다른 의사들처럼 기득권을 누리며 편하게 살아갈 것인가, 본인이 손해를 보더라도 복음의 가치를 위해 어려운 길을 선택할 것인가를 심각히 고민하더라구요. 실제로 그렇게 살아가려고 애쓰는 것을 보고 또 다시 충격을 받았죠. IVF 모임에 참가하면서 삶의 목표가 생기고 내가 왜 사는지 알게 되었어요. 그때부터 생활이 확 달라졌죠. 그 이후로 IVF 활동을 열심히 하게 됐고, 졸업 후에는 IVF 간사로 6년 동안 모교에서 후배들을 도우면서 일했습니다.
 
그럼 그 이후에는 어떻게 IVF행정총무가 되셨는지 궁금합니다.
 
IVF에서는 입사 후 6년이 지나면 사임할 지, 장기적으로 일할 지 선택해야 합니다. 장기적으로 일할 경우 필수적으로 3년 동안 대학원 공부를 하고 와야 하는 제도가 있는데 저에게도 그런 시기가 왔어요. 저는 6년간 일하면서 제 TALENT나 관심이 직접적으로 사람을 돌보는 것에 있지 않다는 것을 깨달았어요. 오히려 숫자와 관련된 것들, 재정을 어떻게 모으고 어떻게 사용할지에 대해서 관심이 많이 갔죠. 때마침 IVF가 CAPITAL CAMPAIGN을 시작했었어요. 도움과나눔 컨설팅도 받고. 2년 정도 모금 업무에 참여하면서 이 일이 저한테 재미있는 일이라는 것을 확인하게 되었어요. 효과도 있었고요. IVF의 150여명의 직원 중 한 명 정도는 이 분야에 전문성을 가진 사람이 나와야 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그 시기에 저도, IVF도 하게 되었죠. 그래서 2008년부터 3년 동안 미국에서 비영리단체 경영 관련 석사 과정을 밟았습니다. 공부를 마치고 돌아와서는 행정총무를 맡게 됐지요.
 
종교단체에서 CAPITAL CAMPAIGN을 시도한 사례가 많지 않은데요, IVF의 CAPITAL CAMPAIGN은 어땠어요? 그 이야기가 궁금한데요.
 
2006년이 IVF 창립 50주년이었어요. 50주년 행사를 준비하면서 50주년 이후에는 어떻게 우리 단체가 나아가야 할지에 대한 논의가 내부적으로 많이 있었어요. 그냥 우리 단체 하나를 잘 유지하는 것은 이제 의미가 없다는 공감대가 있었습니다. 그래서 IVF의 사명을 재정립해보았구요. 그 사명을 잘 이루기 위한 조직구조를 만들기 위해 기독경영연구원을 통해서 컨설팅을 받았어요. 인사, 행정, 재정 등 모든 것에 대해 컨설팅을 받았는데, 취약부분 중 하나로 지적된 것이 재정이었어요. 그 취약부분을 보완하기 위해 거액모금에 관심을 가졌습니다. 그때 도움과나눔도 만나게 되었구요. 모금컨설팅도 받게 되었습니다. Feasibility Study를 통해 모금이 가능하다는 결론을 얻었고, 2006년도에 CAPITAL CAMPAIGN을 시작하게 되었죠.
 
Feasibility Study를 하셨으면 모금 목표액이 나왔었을 것 같은데, 어느 정도 수준이었어요?
 
네. 최종목표액이 98억이였어요. 최초 저희 목표액은 70억이었고요.
 
그럼 Feasibility 결과치가 목표액보다 실제로 높게 나온거예요?
 
맨 처음 Feasibility Study결과가 70억은 가능하다는 것이었어요. 그 다음에 여러 수정과정을 거치면서 98억도 가능하다고 해서 그렇게 목표를 수정하고 진행하게 되었죠.
 
Feasibility Study 를 하고 CAPITAL CAMPAIGN을 하셨는데 결과는 어땠나요?
 
과는 어떻게 해석하느냐에 따라 달라요. CAPITAL CAMPAIGN을 통한 모금액을 아주 좁은 기준으로 해석하면 30% 정도 달성했다고 볼 수 있고, 약간 넓게 해석하면 100% 넘게 채워졌다고 판단할 수 있거든요. 거액기부가 몇 건 있었는데, 그것을 카운트 하느냐 마느냐에 따라 Percentage가 달라지는 거죠. 저희는 내부적으로 카운트 하지 않기로 결정을 했어요. 어떤 기부는 유증인지라 아직 완료되지 않은 기부이기도 했고, 어떤 거액기부자는 저희 CAPITAL CAMPAIGN에 4가지 주제가 있었는데, 그 중 한 가지 주제만을 위해 사용하되, 캠페인 모금 총액에 포함시키지 말라는 조건을 다셨기 때문이에요. 별도 기금으로 운영되기를 원하셨죠. 사실 그 시기에 CAPITAL CAMPAIGN을 안 했으면 이 기부자들이 IVF에 기부를 안했을 수도 있을 것 같아요. 기부를 하지 않는 큰 이유가 “요청을 하지 않아서”라고 하잖아요. 이분들도 다른 여러 곳에 기부할 수 있었겠지만 IVF에서 기부요청을 했기 때문에 저희에게 기부를 해주신 거죠. 어쨌거나 결과적으로는 IVF의 자산이 CAPITAL CAMPAIGN 이전보다 훨씬 늘어났어요. 우리의 사명을 위해 사용할 수 있는 재정이 어느 정도는 확보된 것이죠.
 
CAPITAL CAMPAIGN에 4가지 주제가 있다고 하셨는데 어떤 것이었어요?
 
첫째는 대안제시였어요. IVF가 한국 사회에 대안적 목소리를 낼 줄 알아야 한다. 우리의 관심이 올해 재정수입이 얼마냐, 회원이 몇 명이냐 등 내부적인 이슈에만 머무는 것은 이제 아니라는 거였어요. 사회 문제에 관심을 갖고 공적인 영역에서도 뭔가 역할을 해야 한다는 의미였죠.
 
두 번째는 인재양성이었어요. 준비된 그리스도인 리더를 사회에 배출하는 역할을 IVF가 해야 한다는 것이죠. 여기서 리더란 이 사회에서 높은 자리에 올라가는 사람이 아니라, 자발적인 마음으로 사회의 소외된 구석에서 낮아짐과 섬김의 리더십을 행사 할 수 있는 사람입니다. 이를 위해 실력, 영성, 지혜 세 박자를 갖춘 사람을 길러내야 한다는 거였죠.
 
세 번째는 나눔과 기여였어요. IVF는 전 세계 150국에서 활동하는 국제 단체인데, 한국 IVF가 세계에서 다섯 손가락 안에 드는 규모를 가지고 있어요. 예전에 해외에서 지원을 많이 받았는데 이제는 많이 성장했으니까 모금된 것으로 어려운 나라의 운동을 지원할 필요가 있었어요. 또한 IVF 외부적인 필요, 사회적인 필요, 북한과 관련해서도 우리가 모은 재정의 일부를 사용할 계획이 있었죠.
 
네 번째가 기반조성이었어요. 앞에서 말한 부분들을 실제로 하기 위해서는 행정 시스템도 갖춰야 하고, 사람도 뽑아야 하고, 사무실도 구비해야 되지요. IVF 지방 사무실이 전국적으로 18개가 있는데, 지역적인 인프라도 보완해야 한다고 판단했어요. 이렇게 4가지 주제로 CAPITAL CAMPAIGN을 진행했었어요.
 
CAPITAL CAMPAIGN에서 거액 기부를 하시는 분들을 몇 분 만나셨고 몇 분 정도가 기부 결정을 하셨어요?
 
정확한 데이터가 기억이 나지 않는데요. 인상적이었던 기부자들을 소개해 드릴께요. 그 분은 스스로 오셨어요. 저희가 따로 로맨스 과정을 갖지 않았는데, 캠페인 소식을 듣고 찾아오셨어요. IVF에 빚진 마음도 있어서 기부를 해야겠다는 생각을 갖고 있던 차에 캠페인 소식을 들었던 거에요. 사실 저희에겐 충격이었어요. 이 분은 돈을 함부로 쓰는 것에 대해 민감하세요. 저희가 감사패를 만들어 전달했는데 “내가 이런데 쓰라고 돈을 줬나? 더 가치 있는데 써라”라고 말씀하신 일화가 있어요.
다른 한 분은 IVF 이사셨어요. 기부를 하는 이유 중에 ’참여’라는 것이 있잖아요. ‘자기가 참여하고 있는 곳에 기부한다’는 의미인데, 이분은 그런 케이스이신 것 같아요. 캠페인 이전부터 국제 행사 있을 때마다 외국에서 오신 유명인사들과 만남도 주선해 드리고, 또 행사에서 개회사나 강의를 부탁 드리는 등 우리 활동에 대한 참여를 지속적으로 유도했어요. 참여의 폭을 넓혀오면서 우리가 가진 목표와 미션에 대해서 동의를 많이 하셨지요. 한국 사람들은 동정심 때문에 기부를 많이 한다고 하는데, 이분께서는 저희의 사명 때문에 기부를 결정하셨어요. 또 다른 IVF 이사님도 거액을 기부해주셨는데요. 이분은 캠페인을 위한 비용, 사라지는 비용으로 사용하라고 지정 기부를 해주셨어요. 캠페인을 진행하는데 만만치 않은 재정이 소요된다는 것을 이해하고 계셨죠. 캠페인을 실행하는 실무자 입장에서 참 힘이 되는 기부였어요.
 
98억이라는 목표 금액이 달성되기까지는 얼마나 걸렸어요?
 
좀 전에 말씀 드린 몇 건의 거액 기부를 카운트 한다면 2009년도 초에 달성했다고 볼 수 있어요. 2007~8년도에 조용한 모금을 진행하고 2009-10년도에 대중모금을 진행했어요. 거액기부들이 2008년에서 2009년에 걸쳐 이루어졌거든요. 이론적으로 목표액의 50%를 조용한 거액 기부를 통해 달성하고, 대중모금으로 넘어가라고 하는데, 사실 거액기부를 통해서 목표액의 상당부분이 먼저 채워진 거죠. 그러고 나서 대중모금을 시작했던 셈인데, 생각보다 빨리 달성되었어요.
 
1건이 유산기부라고 하셨는데 아직 국내에는 유산기부가 드문데요. 어떻게 진행되고 어떻게 예우하고 계신가요?
 
2008년에 기부자께서 건강상 어려움을 겪으셨어요. 삶의 중요한 변곡점이 될 수 있는 시점이었는데, 그 시기에 IVF 대표가 기부자를 만나 기부를 요청했어요. 그 때 유산을 전부 IVF에 기부하시기로 결정하셨죠. 변호사 입회하에 법적 기준에 맞춰 자필 유언장을 작성하셨습니다. 저희 기부자 예우시스템이 큰 병원이나 대학들처럼 체계적으로 잘 갖춰져 있지는 않아요. 정해놓고 해드리는 건 저희 출판부(IVP)에서 출간되는 책을 매월 드리는 것 정도에요. 워낙 검소하게 살아온 분이라 그런지 그외에는 바라는 것도 없으세요. 그러나 유산을 받은 만큼 저희가 아들 노릇을 해야 된다는 책임감을 갖고 있어요. 여러가지 개인적인 소소한 필요를 말씀하실 때마다 적극적으로 응답해드리고 있습니다.
 
국내에는 아직 별로 없는데 외국에는 유산기부 사례가 많이 있잖아요. 미국에서 유산기부 관련해서 공부하신 게 도움이 많이 되셨겠네요?
 
유산기부와 관련해서 어떤 방식이 있는지, 또 어떤 이슈가 있는지 배웠으니까 업무를 진행함에 있어 아무래도 도움이 많이 되겠죠? 기부자의 사후에 유산을 받는 것보다는 Planned Gift 형식으로 먼저 기부를 받고, Annuity 등으로 기부자에게 돌려드리면, 기부자와 단체 모두 win-win할 수 있을 것 같은데, 그게 우리나라에서는 쉽지 않다는 것을 발견했어요. 미국에서는 그게 보편적으로 사용하는 방법이라 국세청에서도 어느 정도 이해를 갖고 합리적으로 처리가 되는데, 우리나라에서는 세금탈루, 편법증여를 하는게 아닌가 하는 의심을 갖는 것 같더라구요. 그런 부분이 실질적인 어려움으로 다가오더라구요. 모금분야 종사자, 연구자들이 관련기관 및 관청과도 논의를 많이 해봐야 하지 않나 하는 생각을 하게 됐어요. 오래 펀드레이징 해보신 분들께도 조언을 구했는데 사례가 별로 없기도 하고, 비슷한 고민을 하시는 것 같더라고요. 이런 부분을 포함해서 여러 가지로 도움과나눔이 많은 역할을 해주셔야 할 것 같아요. 미국은 기부자의 나이와 성별과 기부금액에 따라 매년 지급할 수 있는 Annuity의 규모를 결정하는 공신력 있는 기준이 있잖아요. 그런데 한국에는 그런 기준조차 없으니 어렵더라고요. 미국에서 공부할 때 교과서에서 배운 건 말 그대로 이론이고, 지난 1년동안 현장에서 많이 부딪쳐 보면서 많이 배운 것 같아요. 특히 배운 걸 어떻게 우리나라 상황에서 구현해 낼지 더 많은 고민과 연구가 필요한 것 같아요. 어쨌든 우리나라에서 도움과나눔이 선두주자니까 더 열심히 해주셔야 할 것 같아요.
 
미국에서 공부하시면서 한국과 미국의 기부자들이 기부하는 이유에는 어떤 차이를 발견하셨나요?
 
저도 미국에서 모금활동을 한 건 아니라서 단순히 교과서에서 느낀건데요. 미국인들은 좀 더 이성적이고, 한국인들은 좀 더 감성적이다 라고 생각이 들었어요. 어떤 연구결과에 따르면 미국의 경우에 기부하는 이유에서 1위가 사명이에요. 돈을 주는 이유가 그 미션에 내가 동의하기 때문이라는 거죠. 2위가 책임감과 행복감입니다. 본인 스스로의 PRIDE죠. 내가 기부를 통해 사회적인 역할을 한다는 책임감과 그것에 대한 행복감이죠. 3번째가 참여입니다. 내가 참여하고 있는 단체, 내가 일했던 단체에 기여하고 싶다는 거죠.
우리나라 같은 경우는 1위가 동정심, 2위가 행복감, 3위가 책임감. 이게 사실 다 이게 감정적, 정서적인 이유인 거죠. 뭐 그런 면에서 좀 다른 것 같아요.
그렇기 때문에 기부에 대한 접근이 미국과는 조금 달라야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들어요. 미국에서는 ANNUAL REPORT나 FORM 990을 보여 주는 게 상당히 도움이 되거든요. 우리 재정을 어떻게 쓰고 있고, 우리의 미션은 이렇고, 몇 명의 도움으로 예산이 만들어졌고, 어느 정도 사람들에게 도움을 주었다는 걸 다 데이터로 보여주는 거죠. 이런 부분이 미국사람들한테는 ‘이 단체 괜찮다’라고 어필할 수 있겠지만, 한국 사람들은 ‘나랑 이게 무슨 상관있어?’라고 얘기할 수 있을 것 같아요. 반면 한 명의 가슴 찡한 스토리에는 우리가 더 잘 반응하는 면이 있죠. 가난한 나라의 어떤 아이에게 어떤 위기에 있었는데 누군가가 보내준 얼마의 후원으로 삶이 이렇게 변했고 꿈을 꿀 수 있게 됐다! 이런 스토리요. 한국 사람들 마음을 움직이는 데는 이렇게 스토리를 들려주는 게 훨씬 더 좋은 게 아닌가 라는 생각이 들어요.
 
한국의 기부문화가 미국의 기부문화 패턴과 비슷해 질 거라고 생각하세요?
 
한국에서 기부가 더 활성화되기 위해선 시간이 좀 더 필요할 것 같아요. 미국인들이 원래 영국에서 박해 받으면서 이주한 거잖아요. 그래서 신대륙에서 아무것도 없는 상황, 정부도 없고, 기업도 없고, 아무도 챙겨주지 않는 상황에서 스스로의 생명과 건강과 교육을 다 책임져야 했잖아요. 그러한 필요 때문에 스스로 학교도 지었고, 학교의 방향성도 스스로 결정하고, 사람들이 필요해서 누군가를 세우게 됐고, 돈이 필요하니깐 모금과 기부도 하게 됐죠. 이런 경험들이 아주 오랜 기간 동안 문화 속에서 체화된 거죠. 이런 부분을 생각해보면, 우리나라의 경우에도 비영리단체와 기부의 필요에 대한 사회적 공감대가 충분히 형성되려면 시간과 노력이 많이 필요하겠다는 생각이 들어요.
 
모금활동을 하시면서 경험했던 보람이나 어려움이 있었다면 소개해 주실 수 있을까요?
 
저희가 캠페인을 통해 조성한 기금이 있는데, 1년에 꽤 많은 이자수익이 발생해요. 이 수입이 생기면서 이전부터 꿈꿔왔지만, 할 수 없었던 일들을 이제는 할 수 있게 됐어요. 그 중 하나가 연구소였어요. 당장 어떤 결과를 얻어낼 수는 없지만, 연구소가 생김으로써 연구, 세미나 등도 할 수 있게 되고, 다른 단체들과의 네트워크도 생겨날 수 있고… 학생 시절부터 들었던 이야기들이 점차 실현되는 것이 눈에 보이는 것이지요. 또한 이를 통한 영향력이 우리 단체뿐만 아니라 다른 기독교 단체, 교계에까지 미치는 것을 보면서 모금된 돈이 가진 선한 힘이 이러한 것은 아닌가 다시 한 번 생각하게 됐어요.
 
모금 업무를 하면서 좀 어려운 점도 있는데요. 단체 내·외부에서 모금가로서의 전문성을 인정받지 못할 때 어려운 것 같아요. 모금가에 대해서 미국 같은 경우에 전문직으로 분류하고 페이 수준도 상당히 높지요. 많은 경우, 여섯자리(6-digits) 연봉을 받는 것으로 알고 있어요. 그만큼 모금가의 전문성에 대해 인정을 해주는 것이죠. 급여는 둘째 치더라도 모금가의 전문성에 대한 사회적 인정이 있다면 더 힘이 날 것 같아요. 
 
마지막으로 총무님께서 이번 인터뷰를 통해서 하고 싶으신 말씀이 있으시다면 어떤 게 있을까요?
 
저희가 모금컨설팅을 받을 때, 도움과나눔 최영우 대표님께서 “50년후 한국 기독교에 대한 책임은 IVF에 있다”고 말씀하셨어요. 그 말에 어느 정도 공감도 됐고, 책임감도 많이 느끼게 됐었어요. 그런데 그 말을 이제 도움과나눔에게 돌려드려야 할 때가 아닌가 싶어요. ‘50년 후 한국 NPO에 대한 책임은 도움과나눔에 있다’고요. 사실 도움과나눔의 한국 NPO 분야에서의 인지도와 역할, 그에 따른 기대를 볼 때, 이제는 모금과 관련된 부분뿐만이 아닌, NPO 경영과 관련된 전반적인 부분의 성장을 이끌어나가야 한다는 생각이 들어요. NPO들에게 있어 모금이 중요한 요소이지만 전부가 아니죠. 모금 이외에도 “도움”과 “나눔”이 필요한 부분이 많습니다. 이 부분을 채우는 역할을 도움과나눔이 선도적으로 해주셨으면 해요. 도움과나눔이 더 폭넓게, 더 많이 성장하고 발전해서 더 많은 NPO에게 선한 영향력을 줄 수 있기를 기대합니다.
 
오늘 모금, 기부문화, NPO까지 폭넓은 이야기를 나누었는데요. NPO에 대해서 공부하는 사람으로서의 책임감이라는 말씀과 50년 후 한국 NPO에 대한 책임이 도움과나눔에 있다는 말씀이 많은 생각을 하게 합니다. 바쁘신데 긴 시간 인터뷰 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앞으로도 IVF의 많은 성장과 발전을 기대하겠습니다.
 
천명의 펀드레이저를 만나다
진행: 이영동 주임컨설턴트, 이주연 컨설턴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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